복합문화공간 송은아트스페이스 : 뚜렷한 신념과 명철한 예술경영이 만날때

트렌디한 갤러리가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 청담동의 위상을 한껏 살리던 때가 있었다. 한차례 썰물 빠져나가듯 이름 있는 화랑들이 강북행을 결심하거나 철수한 지금, 그럼에도 이 거리가 여전히 예술적으로 매력적인 이유는 신세대 축에 속하는 송은 아트스페이스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송은문화재단의 확고한 신념과 로렌스 제프리스의 탁월한 기획력. 둘의 만남은 이 공간을 가장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송은의 신념이 집약된 공간

 

‘요즘 가장 볼만한 전시’를 꼽아볼 때 송은 아트스페이스는 늘 리스트에 올려두는, 필수 항목 같은 존재였다. 송은 아트스페이스는 지난 2010년, 미국 의 팝아티스트 톰 웨슬만의 전시를 개관전으로 세계적인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의 컬렉션, 카를로스 아모레스, 레안드로 에를리치, 채프먼 형제 등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작가와 컬렉터의 전시를 늘 ‘최초로’ 선보였다.

 

 매년 송은미술대상을 통해 젊고 역량 있는 국내 작가를 발굴했고 안두진, 천성명, 이세경, 한경우 등 젊은 작가의 개인전,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등 해외 작가들의 기획전을 통해 국제 현대미술의 동향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동시대의 접점을 가장 잘 대변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는, 날 선 감각이 여기 있었다. 굵직한 해외 전시가 첫인상을 결정할지언정 속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이 공간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해진다. 송은 아트스페이스는 처음부터 국내 미술인의 지원활동을 위해 태어났으며 경영 전반에 그 취지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

 

1.‘Cantra’,EttoreFavini,iron,wool,wood,2011-2013 2.‘Scolpireiltempo(SculptingTime)’,GiorgioAndreottaCalo,Installationofvariabledimensions:threebronzesculptures,2010

 

 

1989년, 주식회사 삼탄의 故 유성연 회장은 한국의 젊은 미술 작가들을 지 원하고자 사재를 털어 송은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의 호인 송은(松隱) ‘숨어있는 소나무’란 뜻처럼 재단은 지난 20여 년간 대외적으로 크게 알리지 않고 묵묵히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작품 연구를 후원했다. 그러다 지난 2010년 11월, 본사와 멀지 않은 청담동에 복합문화공간을 설립하게 된 것은 다양한 활동으로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대중과 교감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의무가 커지면서 문화예술 및 과학, 스포츠 분야를 지원하는 메세나(Mecenat) 활동이 늘고 있지만 진정성은 둘째 치고라도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나 체계적인 운영 방법이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문화 기업 이미지’만을 추구했기에 빛깔 좋은 껍데기만 남거나 단기간에 사그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송은이 걸어온 길은 의미가 있다. 예술계의 발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 공간에 대한 명확한 비전, 획기적인전시기획.가장당연한것같지만가장어려운일을송은아트스 페이스는 지난 4년간 빈틈없이 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보가 가능했 던 배경에는 아트 컨설팅사 로렌스 제프리스와의 협력이 있었다.

 

 

20년간 걸어온 아트 컨설팅사의 경영 철학

 

로렌스 제프리스는 국내에선 처음 법인 형태로 문을 연 아트 컨설팅사로,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미술과 대중의 접점을 모색하며 <파울 클레> <장 프루베> <렘브란트> <미디어시티 서울>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 등 화제의 전시를 기획했고, 다수의 미술공공프로젝트와 기업의 아트 컨설팅을 진행했다. 로렌시나 화란트-리(Laurencina Farrant-Lee) 대표 는 26세의 나이에 로렌스 제프리스를 설립해 국내외 미술계의 교두보 역할 을 하며 성공적으로 미술계에 안착했다. 예술 경영에 대한 그녀의 확고한 신념은 그저 세월이 가져다준 선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렌시나 화란트-리 대표. 어릴 적부터 홍콩, 일본, 미국, 스위스, 영국 등 각국에서 학생 시절을 보내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 후 지금의 로렌스 제프리스를 설립했다.

 

Q. ‘로렌스 제프리스(Laurence Geoffrey’s)’라는 회사명이 대표님 이름일 거라 짐작했습니다. 

A. 보통 자신의 이름을 딴 화랑이 많아서 그럴거예요. 처음 회사를 시작할 때 어떤 이름으로 할 지 신중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이 회사 평생 할거다, 하는 뚜렷한 확신이 들었거든요. 가벼운 이름이 아닐 것, 유행을 타지 않을것, 나를 단박에 기억할 수 있을 것 등등을 고려하다가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 이름을 쓰게 된거죠. 미술 경매사 소더비(Sotheby`’s)나 크리스티(Christie`’s)처럼 아버지 이름에 ‘s’를 붙여 로렌스 제프리스라 지었습니다.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키며 회사를 끌어왔어요. 정 직하게 운영할 것, 실패하지 않을 것, 포기하지 말 것.

 

Q. 1994년. 회사를 처음 시작할 당시 아트 컨설팅사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A. 예상하시겠지만 ‘아트 컨설팅’ 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나 새로운 거였죠. 화랑처럼 작품을 거래하지도 않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늘 설명해야 했어요. 그 때에 비하면 지금 미술계 환경은 훨씬 좋아졌죠. 일반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고, 국가 기관의 지원이나 작가들의 창작 스튜디오도 상당히 많아졌어요. 개인, 재단, 기관 등 미술 활동에 대한 지원 자금인 ‘펀딩’도 늘었고요.

  아쉬운 점은 좋은 취지에 비해 단기적인 계획으로 접근한다는 거예요. 과연 미술계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회사의 목표 달성이 제대로 되었는지, 홍보는 잘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음식점 하나를 열더라도 주변 상권, 주요 타깃, 운영 자금 등을 생각해야 하는데 예술 경영에서는 그런 예측은 기본이고 언제나 길게 가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해요. 그래야 바퀴가 많아도 한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Q. 송은문화재단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A. 송은 아트스페이스가 완공되기 전 송은문화재단과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 하면 좋을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송은문화재단의 목표는 뚜렷해요. 지난 20년간 그랬던 것처럼 ‘국내 미술 작가를 후원한다’는 목적 의식이 명확했죠.

 로렌스 제프리스는 가장 최초의, 최고의 전시만을 기획한다는 경영 목표와 다수의 전시를 치르며 쌓은 노하우가 있었고요. 재단에서 그런 부분을 높게 평가했고 공통의 목표를 공유했어요. 그래서 로렌 스 제프리스가 송은 아트스페이스와 본사에 있는 송은 아트큐브(전 송은 갤러리)의 운영을 맡게 됐습니다. 탄탄한 자본과 목표가 없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지원사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로렌스 제프리스 또한 송은문화재단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지요.

 

Q.송은 아트스페이스는 미술 애호가부터 일반 대중까지 관람객 층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 인상 깊어요.

A. 송은 아트스페이스의 모든 전시는 무료입니다. 이 점이 사실 아주 중요한데, 전시장을 운영하면 블록버스터 전시가 아닌 이상 입장료로는 운영 수익을 낼 수 없는구조예요. 흔히 몇 천원의 입장료라도 받아야 관람객이 관람에 대한 가치를 생각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20년간 운영해본 바로는 그렇지 않아요. 입장료는 관람객과 미술관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요. 저는 여기 문 앞까지 온 모든 사람에게 무언가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우연히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발견할 수 있고, 누군가와 또 오고 싶어 지기도 하죠. 그런 경험은 중요한 거예요. 좋은 전시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 감이 강한 만큼 기업 입장에서도 무료 개방은 큰 결심이었고요.

 

송은 아트스페이스는 연간 프로그램으로 총 6차례 전시를 기획한다. 전시 는 크게 국내 작가전 3회, 해외 작가전 3회로 나뉜다. 국내전은 송은미술대상 수상자들의 4인 그룹전, 대상 수상작가의 개인전, 만 45세 이하 작가의 개인전이고 해외전은 각국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국가 프로젝트, 만 50세 이하 해외 작가의 개인전, 해외 유명 컬렉터의 소장품을 컬렉션전으로 소개하고 있다.

 

 국내전과 해외전이 이처럼 균형을 잡게 된 이유는 국제적으로 열린 공간이라야 ‘송은의 작가’들이 더욱 넓게 뻗어나가리란 믿음에서였다. 송은문화재단은 작가들에게 더 좋은 공간, 외국에서도 한국 작가에 더 관심을 둘 수 있는 공간을 지향했고 로렌시나 대표는 송은아트스페이스를 국제적인 공간으로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Q. 송은미술대상은 어떻게 선정하고 계신가요?

A. 매년 검증된 심사위원이 선정하고 있고 공평성을 위해 심사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송은미술대상은 우르르 상주고 끝나는 뻔한 레퍼토리를 답습하 지 않고, 작가의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는 편이에요. 작품 한 점만으로 그 작가의 작품관을 알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매년 4명을 선정해 한 작가마다 두루 조명 받을 수 있게 전시하고, 대상 수상자에게는 개인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500명 중 4명의 수상자가 나오지만 지원한 작가 모두에게 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해외에 작가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수상에 관계없이 최대한 기관의 관심도에 맞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2층부터 4층은 전시 공간이다. 2층은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작품에 몰입하게 하지만 각 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는 전면 유리를 통해 들어온 햇빛이 가득 들어찬다.

Q. 해외 전시는 송은 아트스페이스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지요. 작가를 선정할 때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면?

A. 해외에서는 유명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개인전을 열지 않은 45세 이하 의 작가를 선정합니다. 기획하던 도중이라도 다른 곳에서 그 작가를 먼저 소개한다면 과감하게 접어버리죠. 그건 저희의 프라이드와도 연결되거든 요.(웃음) 아기자기하고 판매하기 쉬운 작품은 오히려 한 번 더 고려하는 편 이에요. 한눈에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이 좋아요. 무엇보다도 저희는 한국 작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해외 작가의 전시 를 열고 싶어요. 채프먼 형제, 레안드로 에를리치, 카를로스 아모로스 모두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들이에요. 우리나라 작가들이 ‘이 작가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Q. 지난 2012년 열린 컬렉션전이 각 분야에 화제가 됐어요.

A. 세계적인 컬렉터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의 컬렉션전을 연 것은 그가 부유한 컬렉터라서가 아니에요. 제프 쿤스, 신디 셔먼, 무라카미 다카시, 특히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컬렉터가 바로 피노 회장이었죠. 중요한 점은 그가 한 작가의 작품을 시기마다 꾸준히 구매한다는 점이죠. 작가에게는 그런 지속적인 컬렉터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고요. 동아시아 국가 중에 국제 현대미술 분야의 컬렉터가 제일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전시를 통해 좋은 컬렉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Q. 지금 열리고 있는 국제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는지요?

A. 매년 한 국가씩 전시가 열립니다. 지난 2012년 스위스 <Reflections from Nature : 스위스 젊은 작가전>, 2013년의 프랑스 <The French Haunted House : 프랑스 젊은 작가전>에 이어 올해 이탈리아 <We Have Never Been Modern : 이탈리아 젊은 작가전>이 열립니다. 이탈리아 하면 파스 타, 르네상스 회화, 밀라노 패션 등 연상되는 것들이 많지만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너무나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현재의 미술 동향을 알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다음은 동남아시아의 떠오르는 미술 시장, 인도네시아의 현대미술 작가들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Q. 로렌스 제프리스의 향후 20년은 어떨까요?

A. 지금까지 걸어온 20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어요. 아직 로렌스 제프리스라는 이름이 생소하신 분들이 많지만 저희가 개최한 전시를 보면 하나라도 “어, 나 그 전시 본 적 있는데” 하는 것들이 있을거예요. 앞으로의 20년은 지금까지 밟아온 것에서 한 계단 더 올라서야 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송은 아트스페이스의 기획, 운영은 지속되고요. 언젠가 로렌스 제프리스의 디자인 뮤지엄을 여는 것이 꿈입니다. 또 국내 젊은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는 징검다리 역할은 로렌스 제프리스가 끝까지 해야 하는, 숙명 같은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늘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사람과 사람을 만나고 어 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과정 모두 저와 직원들이 즐거움을 느껴야만 가 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글·이소진 | 디자인·김재석 | 사진·김동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