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마음으로 맺은 영혼의 친구 또 하나의 가족, 반려견
개는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최초의 야생동물이다. 인간은 개의 먼 조상인 늑대와 약40만 년 전까지 삶의 터전을 공유했으며 약 1만 4,000년 전부터 개를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주인에게 충성심이 강하고, 사냥터에서는 용맹했기에 사람은 개를 아꼈고 가까이 두었다. 사냥이 필요 없어진 근대에 들어서면서 개는 삶의 동반자로 자리 잡아갔다.
반려동물인 고양이가 유혹과 ‘밀당’의 동물이라면, 개는 충성과 공감의 동물이다. 진한 마음으로 맺어진 또 하나의 가족, 반려견과 함께하는 이들을 보노라면 그 따스한 온기가 마음으로 전해져 온다.
# 식탁에서 피어나는 행복의 순간들
커다란 자작나무 아래 그늘에 테이블을 내어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점심을 먹는 풍경은 행복으로가득하다. 딸아이 하나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향해 몸을 반쯤 돌리고 있고, 이것은 그림 밖 우리에게 그림 안으로 초대하는 눈빛이 기도하다. 숟가락을 움켜쥔 손과 땅에 닿지 않는 발이 아마 이 집에서 가장 어린 막내인 듯하다.
테이블에 앉은 가족은 모두 여덟 명처럼 보이는데, 가만히 보면 그 소녀의 맞은편에 앉은 이는 이 집의 개이다. 음식을 나누는 엄마의 손길에 개도 아이들처럼 눈길을 집중하고 있다. 앉은 자세와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워 언뜻 보면 사람처럼 보인다. 모자라도 씌워놓으면 정말 감쪽같이 속을 듯하다. 이것은 나머지 가족들에게 그런 개의행동이 낯설거나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과 개가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함께 밥을 나누어 먹는 장면에서 개는 그림 속 가족의 행복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또 그림 속의 개는 사냥의 조력자가 아닌 인간의 일상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로 묘사되어 있다. 가족은 제 구성원을 목적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저 개는 집 밖에서 외부의 낯선 이들을 경계하거나,침입자와 싸우지 않고 집 안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살아갈 듯하다.
그림 왼쪽 빈 의자의 주인은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자, 이 집의 가장인 칼라손이다. 우리에게 낯선 이름의 라손은 ‘스웨덴의 국민화가’로 불리는데, 그와 부인 카린이 꾸민집 ‘릴라 휘트내스(Lilla Hyttn˙˙as)’는 예술가의 집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곳으로, 매해 5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다. 그의 작품은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가족들의 일상의 모습을 투명한 수채화로 그려내어 유럽식 낭만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그림 곳곳에 아이들과 노느라 지친 개가 거실 바닥에 몸을 뉘이고 낮잠을 자거나, 개울가에서 수영하는 아이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그림을 많이 그렸던 칼 라손에게 개는 나무처럼 인간을 둘러싼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다.
# 우울한 소녀와 위로하는 친구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데는 어떤 이유도 없다. 인간의 출생은 전적으로 우연의 사건이다. 우연히 태어난 인간은 각자 살아간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누구와도 100% 나눌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소설가인 조르주 바타이유는 ‘인간의 내적 경험은 제 육체에 갇힐 수 밖에 없기에 우리 모두는 불연속적 존재’라고 했다. 즉 외로움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가피한 요소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나의 외로움과 너의 외로움이 서로 소통하면서 우리 몸에 붙어 있던 끈질긴 외로움을 잠시나마 녹일 수는 있다. 세속의 욕망을 품은 인간은 여러 마음을 안고 살기에, 감정의 소통을 이룰 만한 사람을 만나기는 아주 어렵다. 그래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의 갈래들이 부딪혀 속수무책일 때 나는 인간보다 풍경에 마음을 기댔다.
해가 지는 풍경을 보면 마음은 편안하게 가라앉았으나, 이내 풍경은 인간을 풍경 밖에 두기 때문에 끝내는 더 외롭게 만들었다. 외로움에는 따스한 체온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체온을 개는 인간에게 언제 어디서나 기꺼이 나누어준다.카펫이 깔린 실내 계단 모퉁이에 앉은 소녀는 손으로 턱을 괸 채 눈길은 살짝 위를 향하고 있다. 특별한 무엇을 지켜보는 것 같지는 않다.
소녀의시선에는 호기심보다 근심이 더 크게 느껴진다. 소녀가 입고 있는 원피스의 보랏빛은 그런 의심을 더욱 부채질한다. 세상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으며, 누구에게나 특별한 이유 없이도 우울한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이해보다 위로를 받고 싶어진다.
‘넌 혼자가 아니야.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있고, 너와 같은 곳을 보고 있어. 그러니 너무 우울해하지 마’라고 말하려는 듯, 개는 온몸을 소녀에게 기대어 제 온기를 나눠주고 있다. 이 집에서 저 ‘흰둥이’만 소녀의 울적한 기분을 오롯히 느꼈나 보다. 인간보다 후각은 4배, 청각은 수만 배 발달했으니 어쩌면 저절로 상대가 발산하는 작은한숨 소리나 터덜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기분을 공감했으리라.
진실된 공감보다 큰 위로는 없다. 저 개의 순박한 눈망울처럼. 말로는 할 수 없는 미묘한 심정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따뜻한 성정의 개를 가족으로 둔 소녀가 부럽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저절로 주진 행운은 가족뿐이다. 소녀에게 흰둥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 말 없이도 전해지는 것들
개의 충성심은 강고하다. 모든 마음 있는 것들은변하기 마련이지만, 개는 마음으로 품은 대상을 외면하는 법이 없다. 인간은 자신이 키우던 개도쉽게 잘도 버리지만, 개는 버려져서도 제 주인을버리지 않는다. 미련할 만큼 우직한 마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인간보다 개를 더 아낀다. 특히함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냥에서 이런 충성은 절대적이다.
20세기 초 스코틀랜드 화가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사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개와 인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들을 향해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데, 전경의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바람을 피해보려 하지만, 가장 앞에서 이 무리를 이끄는 퍼키 테리어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향하고 있다. 퍼키 테리어는, 지금 20여 마리의 사냥견 하운드와 두 사람의 안전한 귀갓길을 책임지고 있다. 책임감은 곧 충성심의 다른 이름이다. 비가 내린 직후여서인지 땅은 젖어 있고, 아마도 사냥의 수확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낮게 깔린 회색 하늘은 노력에 비해 수확이 적은 날의 우울함을 강조한다.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태어나보니,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로 시작하는 소설 《개》를 쓴 김훈은 ‘유명 사냥꾼에 따르면 사냥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절대로 개를 탓하지 않아야 한다’고 썼다. 직접 앞장 서서 사냥에 뛰어든 개는 사람보다 더욱 크게 책임감을 느끼는데, 이미 자존심에 상처 나서 주눅든 상태이기 때문에 혼을 내면 자신감을 잃어서 다음 사냥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단다. 좋은 사냥꾼은 절대 개에게 사냥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스튜어트의 그림에서도 그런 책망을 볼 수 없다.
인간의 진심을 아는 개, 개의 진심을 아는 인간, 그들은 진심 안에서 서로와 함께 걷는다. 집에 도착하면 하루를 함께 나눈 고마움으로 인간은 저 개들에게 따뜻한 밥을 나누어 주며, 머리와 꼬리까지 따스한 손길로 쓰다듬을 것이다. 그때 개는 순결한 눈동자로 인간을 바라볼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은,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까지 전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함께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개와 인간은 생물학적 종(種)이 다르고, 피로 맺어진 생물학적 가족도 아니지만, 피보다 더 진한 마음을 나누는 동지로서 가족이다.
글·이동섭 | 진행·이소진 | 디자인·최연희
글을 쓴 이동섭은 방송과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서 예술 작품을 재료 삼아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한편, 대학에서 문화예술을 강의하는 예술인문학자다.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파리 제8대학 사진학과, 조형예술학부 석사(현대무용), 박사 준비 과정(비디오아트), 박사(예술과공연미학) 과정을 밟았다. 주요 저서로는 《반 고흐 인생수업》 《뮤지컬의 이해》 《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 《당신에게 러브레터》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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