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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컬쳐

이중섭의 연애편지 :: 나의 소중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덕에게

by 하나은행 2015. 5. 20.
Hana 컬쳐

이중섭의 연애편지 :: 나의 소중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덕에게

by 하나은행 2015. 5. 20.

‘나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 군. 이상하리만큼 당신은 나의 모든 점에 들어맞는 훌륭한 미와 진을 간직한 천사요. 당신의 모든 좋은 점이 나의 모든 것에 깊이 스며들어 내가 얼마나 생생하게 사는 보람을 강하게 느꼈는지 모르오.내 귀여운 당신의 볼에 있는 크고 고운 사마귀를 생각하고 있소. 그 사마귀에 오래 키스하고 싶소.’

 

아들 태현에게 보낸 이 편지는 건강과 날씨 등 사사로운 일상의 이야기들인데 곁들여 그린 그림과 작게 써 넣은 설명 글에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중섭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림과 곁들인 내용은 중섭이 닷새간 감기를 앓은 일, 그림을 더 열심히 그려서 돈을 많이 벌고 선물을 잔뜩 사서 가겠다는 것들이다.

모든 물질에는 순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주성분이 차지하는 비율, 이 순수함의 척도는 사람의 감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기쁨의 순도, 슬픔의 순도는 물론이려니와 감정이 지배하는 행위와 관계로까지 확장됩니다. 사랑의 순도, 그리움의 순도, 우정의 순도, 신뢰의 순도에 따라 우리는 다시 관계의 기로에 서게 되기도 합니다. 관계의 순도에 대해 의심이 시작되면 그 관계는 곧 유통기한이 끝나간다 여겨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 그림들을 보고 이 편지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 ‘순도’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느끼는 충만함을 순도 100%라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의 천진함을 순도 100%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이 인생길 위에서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시작과 끝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과거를 추억할 때는 대체로 그 감정의 순도가 가장 높았던 때를 되뇌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짧은 한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그 시절을 이루던 감정의 순도, 관계의 농도, 공기의 밀도를 추억하는 것만으로 내 인생도 꽤나 반짝이던 때가 있었다는 것에 안도합니다.

이중섭의 글과 그림에서 나는 순도 100%의 애정과 그리움을 읽었습니다. 올해 초, 현대화랑에서 열린 이중섭의 전시 <이중섭의 사랑, 가족>이 전례 없는 성황을 이루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이중섭이 한창 그림을 그리던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지만 순도가 높은 무엇, 진짜이고, 정말이고, 진심인 무엇은 더 귀해졌습니다. 변치 않은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을 원하는 마음, 그것 하나가 아닐까요. 이중섭이 스물다섯이던 1940년, 유학 중이던 일본에서 야마모토 마사코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순탄하지 못했음은 강점기라는 역사가 증명해줍니다. 유학을 마쳤지만 여자를 한국으로 데려오지 못한 이중섭은 그해 말부터 뜨거운 연서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길 떠나는 가족’,종이에 유채, 29.5×64cm, 1954.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그려 넣었던 그림을 화폭으로 옮긴 작품이다. 편지에 그렸던 그림에는 ‘엄마, 태성 군, 태현 군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황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이라는 설명 글을 덧붙였다. 이중섭은 온 가족이 모여 완전해지기를 이토록 따뜻하게 소망했다.

 

14×9cm 규격 관제엽서에는 글 한 자 없이 그림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보내는 이의 주소도 없으니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마사코가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고 말았을 이 그림엽서 100여 점은 1943년까지 애섧고 절절하게, 때로는 뜨겁고 농염하게, 쉬지 않고 현해탄을 건넜습니다. 두 사람은 패전의 참화가 일본을 뒤덮었던 1945년에야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마사코는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이 되었습니다. 두 아들 태현과 태성을 차례로 얻었지만 곧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별다른 돈벌이도 없이 부산과 제주에서 고단한 피란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이남덕과 두 아들만이 일본인 송환선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1952년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연애 시절과는 또 다른 생이별 앞에서 이중섭은 다시 아내와 두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려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가난과 고독을 혼자 견뎌야 했을 이중섭의 편지에는 그러나 남덕을 향한 뜨거운 호흡이 전해지는 듯하고, 두 아들에게는 자분자분 얼러가며 곁에서 함께하는 듯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습니다. 어느 남편, 어느 아비가 그리할 수 있을까요. 전쟁은 멈췄지만 이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날만을 꼽으며 준비했던 전시가 연이어 실패로 끝이 나고 병까지 얻은 이중섭은 1956년 병실에서 홀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부부지정으로 가득한 엽서 그림들과 끔찍한 부정이 흘러넘치는 편지가 남았습니다. 이 소소한 소품들은 이중섭의 대표작 사이사이를 촘촘하게 채우며 순도 100%의 사랑을 확인시켜줍니다.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그 무모한 몰두가 나는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그 몰두의 대상이 된 여인 또한 부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무모한 몰두가, 순도 100%의 사랑이, 내게는 또 당신에게는 과연 있었을까요.


글·장선애 | 디자인·김재석 | 도움·현대화랑 | 참고·《이중섭의 사랑, 가족》 디자인하우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