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팝아티스트,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세계 :: 나라의 아이들
순진한 듯하면서도 이내 악동 같은 표정을 짓는 아이들. 삐죽거리는 얼굴의 소녀는 어릴 적 철없고 순진했던 시절 우리의 모습이자 동시에 소심하고 시니컬한 현대인의 초상이다.
나라 요시토모의 아이들은 잊힌 옛 물건들을 서랍 속에서 살짝 꺼내어 보듯 과거의 우리를 마주하게 한다. 어른들의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과거를 투영함과 동시에 복잡한 현대인의 감정의 선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 그 점이 나라의 그림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팝아트와 네오팝, 일본 네오팝의 태동과 전개
교수 겸 비평가 사와라기 노이(Sawaragi Noi)에 의해 확립된 용어인 ‘네오팝(Neo Pop Art)’은 동시대적 관점에서 재해석된 팝아트라 해도 무리는 없다. 즉 1950년대 초 영국에서 빛을 밝혔으나 1960년대 미국에서 화려하게 문을 연 ‘팝아트(Pop Art)’가 오늘날의 시각에 맞게 해석되며 진화된 장르라는 것이다. 때문에 네오팝은 팝아트 이후에 나타난 팝아트, 다시 말해 ‘포스트 팝(Post Pop)’이라고도 불린다.
팝아트와 네오팝의 공통분모는 대중과 미디어의 속성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의 콜라주 작품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1956)에서 알 수 있듯 과거 팝아트가 일상의 대중문화적 시각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으로 적극 수용한 것처럼, 네오팝 또한 대중문화를 예술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과 난해함에 결별을 선언했던 팝아트처럼 네오팝 역시 어려운 예술 형식에서 벗어나 인식 가능한 리얼리즘 미학으로 현대인의 감성을 소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도 엄연히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팝아트가 순수미술 형식과 대중문화 간 ‘경계 허물기’라는 성격이 강했다면, 네오팝은 두 정서를 결합한 복합적 양상을 띤다. 팝아트가 동시대 아이콘을 통해 감각적으로 1950~60년대의 표면 현상에 반응했다면, 네오팝의 리얼리즘은 그 현상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억압의 기제에 주목하고, 저항한다는 차이가 있다. 특히 현실에 다소 건조했던 팝아트와는 달리 네오팝은 문명의 발달과 구성원 간 복잡하게 관계 맺는 동시대에 대해 분석적, 냉소적, 회의적으로 반응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참여와 실천을 위한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간극이 있다.
이 가운데 일본의 네오팝은 미국 팝아트가 태동한 1960년대와 맞물리며 출발한다. 사와라기 노이를 비롯한 당시 일부 지식인들은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일본의 신세대를 ‘네오팝’이라 지칭했는데, 일상성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 미학 아래 일본의 대중문화를 잘 반영한 그들의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전후 자본주의와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시대, 사회의 욕망과 대중문화의 수혜를 받기 시작한 이들의 초기 작업은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뤘으며, ‘아니메’(anime, アニメ, animation의 일본식 표기)와 ‘망가’(Manga, マンガ, 漫畵, 만화의 일본식 표기), ‘오타쿠’(otaku, おたく, お宅, 마니아보다 더욱 집착하는 이를 지칭)로 대리되는 이후 세대에서 네오팝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다.
흥미로운 건 1970년대 서구 하위문화(subculture)의 전격적 차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취향문화인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일본에선 ‘아니메’와 ‘망가’라는 장르의 벽을 넘어 독특한 문화현상으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본은 소수가 선택하는 하위문화의 범주를 확장시켜 대중문화의 주류로 올려놨다. 일본적인 고급문화를 토대로 한 정신과 전통 아래 성립된 대중문화적 가치관들을 버무려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성을 옹립시켰고, 일본정통 연극인 가부키나 전통 목판화인 ‘우키요에(Ukiyo-e)’ 같은 일본 전통예술, 영화와 사진 기술을 교집합함으로써 ‘아니메’와 ‘망가’를 독창적인 예술의 범주로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네오팝 형성에 있어 여러 가지 요소들이 그리드(grid)되긴 했으나, 이처럼 지배적 문화에 대한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신세대의 독자성 강한 하위 문화 정신은 보다 강력했다. 대중문화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대중의 정신을 둔화시키고 있으며 소수 문화에 대한 적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리비스(Frank Leavis)주의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에서의 건전한 영향력을 상당히 담보하는 수준으로까지 격상
됐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지배적 문화구조에 대한 동요와 변동을 유도하는 장치로써의 ‘아니메’와 ‘망가’는 오늘날 일본 문화 예술의 한 축을 형성하는 새로운 문화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
서브컬처와 자전적 경험의 결합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 세계
일본의 네오팝 아티스트들은 대중성과 상업성, 자본주의를 하나의 기호로 표상한 서구 팝아트와는 다르게 삶과 죽음의 미학, 애수적인 감성, 괴기스러움과 에로티시즘 등의 표현을 담은 작품들을 심심찮게 선보였다. 청년적, 순간적, 섹슈얼한 팝아트의 특성과 일본 특유의 전통문화와 대중문화의 결합, 고급문화와 서브컬처의 조밀한 조합이 만들어낸 특이함이 하나의 가치체계로 자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사회문화적 각도에서 해석하면, 일본의 경우 지배적인 문화에 대한 하위 집단들의 대응이 경제적으로 규정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구분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사회 구성의 다양한 양상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임을 방증한다.
이와 같은 상태를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가로 패전국과 고도의 경제 성장과 같은 모국의 급격한 변화를 보고 자란 요코오 타다노리(Yokoo Tadanori)를 비롯해, 오타쿠 문화를 자신의 예술 세계로 적극 수용한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소녀 이미지를 통한 소통의 언어를 선보여온 나라 요시토모(Nara Yoshitomo),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작업의 아이다 마코토(Aida Makoto) 등을 꼽는다. 이들은 일본 네오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삽화가, 일러스트레이터를 망라한다. 모두 우리나라에서 한 번 이상 전시됐다는 공통분모도 있다.
이 중 순수미술 형식과 대중문화의 정서를 결합한 복합적인 양상의 작업으로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나라 요시모토는 세계 무대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일본 작가이자 국내에서도 인기 절정인 인물이다.
초기엔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와 함께 국내에 다수의 팬을 보유한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Yoshimoto Banana, 본명 요시모토 마호코(吉本真秀子))의 소설 《하드보일드, 하드 럭》과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표지와 삽화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예술가로서의 성장 과정과 변화를 소담하게 담은 자전적 삽화 산문집 《작은별 통신(The Little Star Dweller)》(2005)으로 점차 입지를 다졌다.
그러던 중 우리에게 나라 요시토모라는 이름이 명료히 각인된 건 2005년 서울 로댕갤러리(현 플라토뮤지엄)에서 열린 <내 서랍 깊은 곳에서>라는 제목의 첫 내한 개인전이었다. 이 전시엔 무려 8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나라 요시토모가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한 감동적인 시간들로 채운 영화 <요시토모 나라와의 여행>(2008)이 개봉해 그의 인기는 더욱 단단해졌다. 하지만 나라 요시토모라는 작가를 오늘로 이끈 원동은 무엇보다 개성 강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독특한 캐릭터가 한몫했다.
그의 작품에는 늘 순진한 듯하면서도 악동 같은 표정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대개 어린아이나 개, 고양이 같은 의인화된 동물들이다. 이 가운데 소녀는 캐릭터의 중심이다.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한 이 소녀들(아이들)은 빨갛거나 파랗거나, 혹은 노란색의 밝고 앙증맞은 의복을 걸쳤지만 고독함과 우울함이 교차하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왠지 모를 반항심과 만나게 된다. 괜스레 노려보는 꼬마들 때문에 상쾌한 마음으로 접근했다가도 불쑥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하나 유심히 뜯어보면 알 수 없는 애정이 스미는, 불편하면서도 짜릿한 감정 역시 속일 수 없는 것이 나라의 그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복잡하고 미묘하며 야릇한 감정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사실 귀엽고 한없이 순진무구할 것 같은 어린 꼬마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반항적이고 때로는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은 우리 내면에 감춰진 두려움과 고독감, 반항심, 잔인함 등 복잡한 현대인의 감정들과 순간순간 대리하는 이유가 크다. 희한하고 괴상스러우며 시니컬하지만 호기심과 미소를 짓게 하고, 숨겨진 고독함의 공명으로부터 기인한다. 여기에 나라의 작품들은 이해하기 쉬운 스타일의 이미지로 오늘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형성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지만 실질적으론 진실하지 못한 부재의 향연, 현대인의 본질적인 고독과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우린 알 수 없는 무엇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라 요시토모 작업은 내적으론 자전적 경험이, 외적으론 새로운 전위문화에 대한 관심이 투영되어 있다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이야기만큼 진솔하게 공감하는 건 드문 데다, 다다이스트(Dadaist)나 플럭서스(Fluxus), 낙서화(Graffiti Art), 존 케이지(John Cage)나 쇤베르크(Arnold Sch˙˙onberg)의 음악, 대중적인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Rock) 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깊은 호기심을 보인 이력도 중요한 역
할을 했다는 것이다.
나라 요시토모 작품의 미학적 의미
일본의 네오팝 세대가 전체적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라 요시토모처럼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청소년기부터 몰입해온 저항과 자유, 죽음에 대한 찬미 등을 노래하는 로큰롤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일본과 서양미술사를 아우르는 예술 전통에 대한 애착 아래 청소년기부터 심취한 저항과 자유를 일러스트, 회화, 조각, 드로잉 등 영역의 경계를 초월한 현대미술을 통해 폭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을 드러내왔다. 여기에 일본 문화 특유의 오라, 그러면서도 무국적성에 기반을 둔 보편성의 획득도 저버리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그림은 어디에 내놔도 수용될 수 있었고, 이는 오늘날 나라의 위치를 변별 짓게 하는 알고리즘(algorithm)이 되고 있다.
한편으론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에선 상징과 풍자, 해학적인 면모를 통해 만화의 형태적 개념을 읽을 수 있는데, 단순, 왜곡, 과장, 변형 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만화뿐 아니라 우키요에의 작품에서의 영향을 감지토록 하며, 구체적으론 19세기를 살다 간 한참 선배인 가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나 우타가와 구니요시(Utagawa Kuniyoshi)의 흔적들도 엿보인다. 반대로 나라의 영향이 마유카 야마모토(Mayuka Yamamoto), 카와시마 히데아키(Kawashima Hideaki) 등의 일본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전승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그의 그림은 만화와 우키요에라는 시공을 넘나드는 장르를 포괄하고 있으며, 애수(哀愁),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 생사의 미학, 가와이(かわいい, 可愛い, 귀여운 감상)적 흔적, 종말적 사상 등이 포박된 일본 전통문화와 감성적 특성, 자신의 삶을 의탁하고 있는 동시대 대중문화를 지혜롭게 버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딘가 모를 슬픔과 비애의 정(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 物の哀れ) 등이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서브컬처의 영향, 지리적 특이성, 패전 후 일본인의 감성이 효과적으로 반영된 작업임을 간파할 수 있다.
다만 그의 모든 궤적은 인위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선택해왔다는 점에서 남다르며, 잊힌 옛 물건들을 서랍 속에서 살짝 꺼내어보듯, 과거의 자신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위한 힌트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는 점,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을 터이지만 나라의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의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과거를 투영하고 있는 상징적인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미학적 가치는 완성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악동처럼 굴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작은 으름장에 울먹이던 어릴 적 철없고 순진했던 시절의 우리 모습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나라의 아이들’은 소심하고 다소 비굴한 현대인의 초상이면서 동시에 나라 요시토모만의 감성과 교배되어 세상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하나 반항적이고 때로는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이들 표정에서 곧 우리 내면에 감춰진 두려움과 고독감, 반항심, 잔인함 등 복잡한 현대인의 감정의 선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시니컬하면서도 귀여운 양면성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포커페이스’로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속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나라의 그림을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나라 요시토모 Nara Yoshitomo
1959년 일본 히로사키 출생인 나라 요시토모는 아이치현립예술대학을 나와 1988년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에서 유학한 후 2000년까지 독일을 근거지로 활동했다. 그동안 요코하마 미술관(일본), 아시아 소사이어티 뮤지엄(미국 뉴욕), 발틱 현대미술센터(영국 게이츠헤드), 말라가 현대미술센터(스페인 말라가), 헤이그 현대미술관(네덜란드 헤이그), 모던 피나코테크(독일 뮌헨), 클리브랜드 현대미술관(미국 오하이오), 산타모니카 미술관(미국 캘리포니아), 시카고 현대미술관(미국 일리노이), 괴테 인스티튜트(독일 뒤셀도르프) 등의 미술 기관에서 전시했다.
2005년 6월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한국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해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런던 데어리 아트 센터(Dairy Art Centre)에서 <내 마음 속 어떤 곳에서 보내는 인사(Greetings from a Place in My Heart)>를 주제로 한 작품전(2014. 10. 3~12. 7)을 열었다.
30년에 걸쳐 제작한 나라의 드로잉을 총망라한 회고전인 이번 전시에는 <미드나이트 뱀파이어(Midnight Vampire)>(2014), <한밤의 고요(Midnight Silence)>(2014), <나는 되고 싶어(I wanna be)>(2013)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유아적인 상상, 어른들이 지닌 불안, 저항에 관한 환상을 담은 대규모 브론즈 조각은 작가의 확장된 예술 세계를 고찰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평가받고 있다. 나라는 현재 일본 토치기 현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홍경한
글을 쓴 홍경한은 미술평론가로서 시각예술저널 <경향 아티클(article)> 편집장,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KBS라디오 문화한마당 고정 패널, 방송대학TV <아트앤토크> MC, <주간경향> 고정 칼럼니스트를 맡고 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을 지냈으며, CJ E&M TV 스토리온 <아트스타코리아> 심사위원, KBS TV미술관 강사를 지냈다. 패션 디자인 매니지먼트 인스티튜트를 비롯한 아카데미와 여러 대학에서 현대미술이론, 서양미술사 등을 주제로 강의했다. 저서로는 미술평론집 《기전미술》, 문화예술 비평집 《고함》 등이 있고, 매일 예술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글·홍경한 | 진행·이소진 | 디자인·류미라 | 도움·페이스 갤러리 뉴욕(Pace Gallery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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