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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컬쳐

연인을 닮은 그림들, 화가들의 <사랑의 시절>

by 하나은행 2014. 4. 23.
Hana 컬쳐

연인을 닮은 그림들, 화가들의 <사랑의 시절>

by 하나은행 2014. 4. 23.

사랑의 면면들을 담은 그림은 넘칠 정도로 많다. 화가들 역시 예술가이기 전에 사랑의 시작에 가슴 두근거리고, 이별에 눈물 흘린 청춘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 그림이 더 이상 군주나 귀족,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시기를 지나 화가들이 원하는 주제들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게 된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막 시작되는 사랑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청춘,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작품은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물랭 드 라 갈 레트의 무도회>다. 가로 175cm, 세로 131cm의 이 야심 찬 대작은 춤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캔버스 가득히 담고 있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젊은이들의 유원지였다. 이곳에서는 일요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야외 댄스파티가 열렸고, 주머니 가벼운 파리의 보헤미안들은 이 댄스파티로 몰려와 밤늦게까지 춤을 추며 놀았다. 그리고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단골 손님이던 르누아르는 1년에 걸쳐서 초여름 오후의 싱그러운 젊음들을 큰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 뒤편에 그려진 춤추는 남녀 무리들은 실제 파티에 온 남녀들이었지만, 그림 앞쪽의 인물들은 르누아르의 친구들이거나 이웃 처녀들이었다. 그림 정면에 그려진 두 여성은 몽마르트르에 살면서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던 마고와 에스텔이라는 처녀들이다.그녀들은 파티에서 처음 만난 남자들의 말솜씨에 반한 듯, 몸을 기울여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남자들 중 등을 돌린 한 남자가 능란한 말솜씨로 처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림 맨 오른편에 앉은 남자는 약간은 수줍은 시선으로 처녀들의 발그레한 뺨과 장밋빛 입술을 열심히 바라본다. 이 청년은 르누아르의 친구이자 작가인 조르주 리비에라다. 아마도 남자는 친구처럼 여자들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반듯한 자세로 앉아서 처녀들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과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띤 입술에는 분명 막 시작된 사랑의 광채가 반짝이고 있다.

 

사랑을 담은 연인의 시선 하면 르누아르의 선배인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가 그린 <라퇴유 영감네 레스토랑에서>를 빼놓을 수 없다. 따스한 봄 햇살이 비치는 파리의 한 레스토랑, 야외 자리에 앉은 남자는 뜨겁고도 열정적인 시선으로 연인을 바라본다.

남자는 화사한 봄 햇살도, 등 뒤에선 웨이터의 눈길도 느끼지 못한다. 남자의 눈에 비친 세계에는 오직 연인의 모습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의 눈망울 속에 연인의 모습을 새겨 넣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내밀어 연인의 시선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지금 이 순간, 영원과도 같은 사랑의 마법이 이들을 감싸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마네는 이미 건강을 잃은 상태였다. 매독으로 인한 이동성 운동 실조로 화가의 다리는 조금씩 마비되고 있었다. 목전에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하면서, 마네는 자신의 삶을 회한의 눈길로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기억들, 오직 사랑으로 행복하고 사랑으로 빛나던 젊음의 한순간을 캔버스에 새겨 넣으며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강렬하게 그린 화가는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일 것이다. 쿠르베가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고 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19세기 중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양 쪽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사실주의를 내세운 화가가 쿠르베이기 때문이다. 그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는 기치 아래 현 실의 어둡고 가난한 측면을 부각한 그림들을 그렸고, 보수적인 파리 평단은 그에게 ‘추한 것들을 극도로 추하게 그릴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혹평을 퍼부었다.

현실에서도 쿠르베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1871년에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 파리 코뮌에 가담해서 미술인 동맹의 회장을 맡았다가 파리 코뮌이 진압된 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스위스로 추방당했다. 그리고 스위스에서 무일푼으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일생 동안 미술에서는 사실주의를, 그리고 현실에서는 무정부주의를 추종했던 이 화가의 화폭 어디에 사랑의 광채가 빛나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리옹 드 보자르에 소장된 <행복한연인>을 보면 이 열렬한 행동주의자의 거친 가슴 어딘가에 사랑의 불꽃이 은밀히 타오르고 있었음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한 몸처럼 서로에게 몸을 맞대고 있다. 남자의 손길과 눈빛은 강렬하지만 부드럽게 연인을 감싼다. 여자는 조금은 나른한, 수수께끼같은 표정을 지은 채 남자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가죽장갑을 낀 남자의 손과 여자의 하얀 손, 그리고 두 연인의 얼굴과 몸이 모두 거울처럼 맞닿아 있다. 긴 곱슬머리에 수염을 기른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는 시인이나 예술가 같은 풍모를 풍긴다. 고급스러운 푸른 벨벳 드레스 차림의 여자는 남자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인다. 이들은 세상이 금지하고 있는 사랑, 가난한 작가와 귀부인 신분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저 사랑의 기쁨에 빠져 있는 평범한 연인일지도 모른다.

 

쿠르베는 일생 동안 결혼하지 않았다. 아니, 평생 동안 화단의 몰이해와 보수적인 왕당파와 투쟁하느라 결혼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행복한 연인’ 속의 남자 얼굴은 쿠르베의 자화상과 거의 똑같다. 그러면 여자는 누구일까? 그림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피부색이 짙은, 생동감 있게 묘사된 남자에 비해 여자는 지나치게 창백하고 평면적이다. 어찌보면 현실의 남자가 벽에 그려진 여자 그림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쿠르베가 간절히 원하던, 그러나 일생동안 갖지 못했던 꿈 속의 연인일지도 모른다. ‘자유외에는 그 어떤 곳에도 속박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던 이 화가가 가장 속박되기를 원했던 곳은 끝내 찾지 못한 연인의 따스한 품속 아니었을까. 


글·전원경 | 진행·이소진 | 디자인·최연희 | 사진·이명수